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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외국인 어선원 송출입 과정의 문제와 개선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인권단체와 수협중앙회가 날 선 공방을 벌였다. |
외국인 선원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일종의 알선비인 ‘송출비용’을 민간업체에 건네는 것은 불법이다. 송출비용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고, 선상에서 강제노동을 시키는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2017년부터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어선원노동협약(188호)을 현재 18개국이 비준했다. ILO의 강제노동 관련 협약 조항을 이식한 이 협약인데, 한국 정부는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현지 외국인 선원 송출업체에 막대한 규모의 송출비용을 부담한 외국인 어선원을 고용하는 구조다.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의 현지 송출업체가 송출비용을 불법적으로 전가하면서 선원을 모집하면, 우리나라 송입업체가 이 선원들을 받아 국내 연근해 어선과 계약을 맺고 일자리를 준다.
이런 구조에서 국내 송입업체는 외국인 선원에게 이탈 보증금과 관리비용을 요구하고 재계약시마다 수수료를 편취해 왔다. 송입업체는 최근 이런 관행을 근절했다고 주장하지만, 인권단체는 이탈 보증금이나 관리비용이 송출비용에 포함돼 외국인 선원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국회는 이런 불법적인 노동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외국인 선원 국내 출입국 관리를 정부가 담당하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선주를 비롯한 이해 당사자의 반발이 거세다.
인도네시아 선원, 한국 오려고 최소 972만원 낸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변호사협회·유엔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선원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와 함께 개최한 ‘외국인 어선원 송출입 과정의 문제와 개선과제 토론회’에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했다.
인권단체에 따르면 외국인 선원 1명이 국내 연근해 어업에 종사하기 위해 내는 돈은 1천만원을 웃돈다. 오세용 경주 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인도네시아 현지의 모집광고를 보면 올해 국내 연근해 어업에 종사할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을 위해 내야 할 돈은 1억2천300만루피아에 달한다”고 말했다. 우리 돈으로 972만9천300원 상당이다. 2018년 모집 당시 9천200만루피아에서 크게 올랐다. 우선 3천만루피아를 먼저 결제하고, 최대 8주간 이뤄지는 교육이 끝난 뒤 4천만루피아를 추가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비자를 발급받고 비행기표까지 결제하면 다시 5천300만루피아를 낸다.
끝이 아니다. 외국인 선원은 현지 송출업체에 집이나 땅 문서를 넘기고, 계약기간을 모두 채우면 돌려받는다. 오 소장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현지에서 돈을 빌리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중국과 베트남 등 우리나라가 주로 외국인 선원을 수급받는 국가의 송출비용은 모두 1천만원을 웃돌았다.
국제법상 불법인 송출비용,
우리나라는 5천500달러 상한
국내 어선에서 일하는 모든 외국인 선원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다. 20톤(t) 이상 연근해 어업을 하는 외국인 선원만 이런 구조에 갇혀 있다. 배경은 그들의 비자다.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 고용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관리 책임을 맡은 고용허가제가 뼈대다. 이들은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다. 정부와 정부가 인력송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한국어능력시험과 기능시험으로 자격을 검증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다. 해외 현지 노동자 모집은 산업인력공단 ESP센터가 담당한다. 송출비용은 발생하지만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노동자를 고용한 국내 고용주가 부담한다. 이 과정에 민간 송출입 업체는 전혀 개입할 수 없는 구조다.
원양어선과 20톤 이상 연근해 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선원은 이와 다른 선원취업(E-10) 비자를 받는다. 이 비자는 외국인 선원제로 별도 관리하는 비자다.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고, 실무는 수협중앙회가 맡는다. 이 제도 아래서 수협은 국내 송입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는다. 강진만 수협 어선안전조업본부 선원지원실장은 “선박이라는 특수한 사업장과 육지노동과 다른 어업의 특성에 맞춰 신속하게 인력을 수급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수협은 송출비용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수협은 송출비용을 허용하되 5천500달러까지 상한을 두고 있다. 강 선원지원실장은 “송출비용은 외국인 선원의 교육과 지원에 쓰이는 비용”이라며 “과도한 송출비용이 문제였던 것은 맞으나 해외 현지법인의 송출비용 문제를 우리나라가 개입해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수협은 국내 송입업체 경쟁을 강화해 질을 관리하겠다며 자회사 4곳을 운용하고 있다.
“입국하면 여권·외국인등록증·통장 뺏겨
수협·송입업체 “인권단체가 허위사실 주장”
인권단체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입국한 외국인 선원이 강제노동과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여권과 통장 압수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송입업체는 외국인 선원으로부터 동의서만 받으면 너무도 거리낌 없이 여권과 외국인등록증·통장을 압수하고 돌려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다”며 “관리비 징수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하자 송입업체는 이를 현금으로 징수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송입업체에게 잘못 보이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국에 돌아가서 고액의 이탈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예정된 손해배상액을 내야 해 송입업체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선상에서는 20시간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고, 폭언·폭설에 노출되는 등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수협은 인권단체의 주장은 허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강 선원지원실장은 “과거의 이야기를 마치 지금 문제인 것처럼 침소봉대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선주와 어업의 공동 발전을 위해 민간 송입업체와 수협을 정부가 더 지원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송입업체 관계자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무조건 돌려주고, 세심하게 적응을 지원하고 있다”며 “인권단체가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송입업체 관계자는 “국정감사에 출석한 외국인 선원의 주장은 위증”이라며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인권단체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해수부·수협이 통합관리” 정부 대책 논란
인권단체 “노동문제 외면한 수협 못 믿어”
이 같은 상황을 풀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도 논란이다. 해수부는 지난 6월 외국인 선원 도입체계 공공성을 강화한다며 해외 주요 송출국과 MOU를 체결하기로 했다. 과도한 송출비용을 요구하는 현지 송출업체를 해당국 정부가 규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외국인 선원 인력풀을 형성해 송출업체를 대체할 계획도 세웠다. 국내 송입업체에 대한 평가와 관리감독도 강화한다.
9월에는 고용허가제를 적용받는 20톤 미만 연근해 어선에 대한 관리를 외국인 선원제로 끌고 와 통합관리하겠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노동부와 해수부로 이원화한 관리체계를 일원화하고 근로감독 인력을 대폭 증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권단체는 이미 자회사까지 꾸려 시장에 뛰어든 수협에 또 다시 관리감독 권한을 주는 것에 우려를 드러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두 계획을 통합적으로 해석하면 연근해 어업 외국인 선원 도입·관리를 수협이 담당하게 돼 송출비리와 사후관리의 문제점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혹평했다. 선주의 이익을 대변해 외국인 선원 노동문제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온 수협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반발이 커지자 토론회에 참석한 이종호 해수부 선원정책과장은 “공공기관이 꼭 수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적절한 다른 기관을 살펴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서기까지 했다. 졸지에 관리감독 권한을 내놓을 위기에 처한 수협도 불만이다. 강 선원지원실장은 “외국인 선원관리 노하우를 가진 수협을 오히려 정부가 더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맹성규 의원은 민간 송출입 업체의 개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처럼 정부간 MOU를 체결해 송출입 업무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국내 선원관리 체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