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근로기준법 프레박람회’에 마련된 전시공간.
“계약직이라서 당연히 4대 보험이 가입돼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첫 월급을 받고 나서 급여명세서를 보니까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로 명시돼 있더라고요. 계약직이라고 해도 막상 가 보면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아요.”(학원강사 A씨)
“공식 채용절차를 통해서 뽑혔고, 일주일에 5일 이상 상주하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방송을 매일 하고 주말에 당직도 서는데 ‘고용관계가 없다’ ‘자유소득자다’고 해요. 고용관계가 없는데 왜 당직을 시키나요.”(아나운서 B씨)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10명 중 6명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사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들은 3.3%인 사업소득세 납부나 4대 보험 미가입을 별도로 약정하거나, 재직 중 다른 계약서를 추가로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사업자로 위장된 ‘가짜 3.3 노동자’는 대부분 업무 수행 과정에서 관리자의 지휘·감독을 받지만 노동자로서 보호는 받지 못했다.
1년 이하 근무 52.1%, 월평균 급여 208만2천원
37% ‘근로소득세 미납부’ 사실 재직 도중 인지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근로기준법 프레박람회’를 열고 ‘가짜 3.3 노동실태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6월23일부터 10월20일까지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1천8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방송·학원·스포츠·건설·조선 산업에서 종사하는 13명은 심층 면접조사를 했다. 사업소득세 3.3%를 납부하는 개인사업자로 위장된 노동자들에 대한 첫 실태조사다.
이들은 대부분 단기 계약직으로 임금 수준이 낮았다. 고용형태는 계약직이 49%로 가장 많았고, 일용직(14.9%), 임시직(14.8%) 순이었다. 평균 근무기간은 35.5개월이었는데, 1년 이하 근무한 경우가 52.1%로 절반을 넘었다. 월평균 급여는 208만2천원으로 최저임금을 월 단위로 환산한 191만4천440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6명(57.2%)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계약서에 3.3%를 뗀다고 적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1.5%,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했다”의 경우는 10%, “재직 중에 다른 제목의 계약서를 추가로 작성했다”는 응답자는 6.3%였다. 일반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도 19.4%였다. 응답자 10명 중 3명(31.7%)은 “어떤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4대 보험에 모두 가입하지 않고, 사업소득세를 내고 있었는데 이를 인지한 시점은 ‘재직 중’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10명 중 7명(72.5%)은 4대 보험에 모두 가입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55.2%)이 사업소득세 3.3%를 납부했다. 4대 보험 미가입 인지 시기와 근로소득세 미납부 인지 시기에 대해서는 각각 27%, 37.3%가 “재직 중”이라고 했다.
“상시 해고 위협에 위험업무 내몰려”
응답자 대부분은 사업소득세를 납부해도 실제로는 사업주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산업별로 봤을 때 “직장에서 정한 업무의 범위와 주된 내용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다”는 질문에 조선산업(94.3%), 스포츠산업(83.3%), 학원강사(80.6%)의 긍정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직장에서 정한 통상적인 시간과 주된 장소에서 근무한다”는 조건에는 스포츠산업(93.3%), 조선산업(93.1%) 긍정 비율이 높았고, “수행 중인 업무를 사업주(관리자)가 확인해 변경할 수 있다”는 조건에는 외식산업(84.7%) 긍정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쉬운 해고’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데다 위험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태린 권리찾기유니온 정책국장은 “‘가짜 3.3’ 노동자들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데 사업주가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11개월 미만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잦다”며 “업무 도중 부상이나 사고를 입었을 때 산재처리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자비로 처리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분석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직종의 특성이 ‘가짜 3.3’을 만드는 게 아니다”며 “기업이 노동자를 권리에서 배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정부는 기업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근로기준법을 좁게 해석하고, 법원은 그 해석을 수용하는 방식이 이어져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실태조사는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사장님’이 노동자로서 선언하도록 돕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가 이 노동에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라며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