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반구의 솥, 코끼리도 담아낼 듯한 국통과 찜통, 삽과 가래와도 같은 조리도구를 다루며, 씻고 썰고 다지고 볶고 튀기는 노동! 끊임없이 찬 물과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불과 기름이 튄다. 그리고 층층이 쌓아 올려지거나 무너지는 스테인레스와 견고한 플라스틱 식기들이 내는 금속성 소음! 차분히 식판 위에 올라앉은 밥과 찬만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짐작하지 못한다, 그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현장의 살풍경을. 20킬로그램이 넘는 쌀가마와 밀가루 포대를 들어 옮기고, 씻고 앉히고 반죽을 하고 튀김옷을 입히고, 조림이며 찬거리를 반구의 거대한 솥에 넣고 삽자루와 맞먹을 조리기구로 쉼 없이 뒤집고 섞어가며 볶고 조려내는 과정은 마치, 모래를 치고 시멘트를 섞고 물을 부어 콘크리트를 개어 올리며 삽질이 난무하는 건설현장과도 같으며, 부글부글 끓는 기름 솥에 온갖 식재료를 튀겨내는 과정은 불꽃 튀는 용접이나 주물 작업에서처럼 화상이 흔한 현장이다. 채소며 육류며 손목이 끊어질 듯 썰어내야 하는 칼질 도마질과 수시로 씻고 닦아내야 하는 세척(설거지) 작업은 제조업의 통상적인 조립공정 이상으로 고된 반복 작업이며 소음노출 작업이다. 그런 노동과정에 엄마의 손맛과 정성은 언감생심이다. (류현철,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나름북스, 2017)
지난 3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주최한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증언대회가 열렸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안전보건 문제는 미끄러짐·베임·화상 등 안전과 근골격계질환 문제로 출발했다. 지난해 2월 폐암이 최초로 산재로 인정된 이후 조리흄 노출으로 인한 호흡기계 및 기타 악성 종양의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14일 기준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산재신청은 79건, 승인 50건(승인율 63%), 불승인 7건, 진행 중 21건이다. 산재로 사망한 학교 급식노동자는 현재까지 5명이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9월까지 노동안전보건단체인 일과건강에서 운영하는 직업성·환경성암 119를 통해서 모두 73명의 학교 급식노동자가 폐암(45명), 유방암(11명), 갑상선암(6명), 백혈병(4명) 등의 문제를 접수했다고 한다.
조리급식 노동자들은 밥 짓는 노동의 고단함과 골병부터 죽음에 이르는 폐암까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들의 직업성 질환이 산재로 인정받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후적 보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용노동부와 교육청에서도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학교 급식실 환기장치에 대한 실태조사를 수행하고, ‘학교 급식조리실 환기시설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노동부에서 전문가들과 협의를 통해 학교급식 종사자 폐암 건강진단 실시 기준(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55세 이상 또는 급식업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에 대해 폐암 선별검사로 저선량 폐CT 촬영)을 마련했다. 시·도 교육청은 건강진단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취합 중이다. 앞선 증언대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29일까지 취합된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 검진 결과 5천979명의 검진자 중 경계성 결절을 포함한 폐암 의심 소견을 보인 노동자들의 27.3%(1천634명)에서 이상 소견을 보였다. 폐암검진 대상이 되는 급식종사자 중 폐암의심 소견이 있는 경우는 10만명당 446명이다. 2019년 암등록 통계상 국내 전체 여성 중 폐암 확진자가 10만명당 37.4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물론 급식노동자는 폐암 확진이 아닌 저선량 CT 판독에 따른 폐암 의심자라는 점과 연령 보정 표준화 등을 거치지 않은 상황이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더 나아가서는 조리흄 노출이 의심되는 전체 노동자들의 폐암 위험에 대한 위험의 크기를 사전에 예측해 추정하고 향후 관리대책을 모색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의 빅데이터위원회는 직업성 질환 예방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위원회에서 건강보험 데이터와 고용보험 데이터를 연계하면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폐암을 포함해 다양한 직종의 직업성 질환 규모 추정, 업무관련성 및 역학 연구가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표자료에서는 고용보험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들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빅데이터위원회에는 노동부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 사업장들이 위험성 평가를 통해서 일터의 위험을 확인하고, 노출 가능성과 결과의 중대성을 고려해 위험의 크기를 평가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서 개선대책을 수립하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 평가는 국가적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로 수행돼야 한다. 같은 원칙과 방법으로 업종과 직업별 위험을 예측하고 평가해 정책 대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건강보험·산재보험·고용보험을 연계한 분석 작업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함께하고자 하는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연계 작업에 걸림돌이 있다면 그조차도 해결책을 함께 논의해 보면 어떨까? 공공성에 기반한 직업보건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국가 수준의 직업성 질환 위험성 평가나 모니터링을 위한 노동부의 적극적이고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