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의 중요성·시급성 고려”했다는데… ‘결사’도 ‘자유’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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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360회 작성일 20-12-11본문
개정 노동법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의 쟁점 법안으로 분류된 특고3법(▲고용보험법 개정안 ▲산재보험법 개정안 ▲보험료징수법 개정안)과 노조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아직 정부이송과 대통령의 공포 과정이 남았지만, 입법의 9부 능선을 지난 셈이다. 이번에 국회 문턱을 넘은 특고3법과 노조법, 근로기준법은 ILO 기본협약 중 제87호와 제98호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는 목적에서 입법 절차를 밟았다. 과연 법은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이뤄졌을까?
8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환노위 안건조정위는 특수고용노동자에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적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국정감사 당시 문제가 됐던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제외 사유 개선의 내용을 담은 산재보험법 개정안, 보험 적용에 따른 보험료 징수를 규정한 보험료징수법 개정안 등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다. 안건조정위를 마친 환노위는 다시 전체회의를 열고 특고3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특고3법은 공포 후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다만 플랫폼노동자는 2022년 1월부터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획득한다. 특고3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공감했기 때문에 특고3법은 무난하게 환노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위해 개정한다던 노조법,
‘결사’도 ‘자유’도 국가 통제 하에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63번째로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임기 중 ILO 기본협약 중 아직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고 있는 2개 부문 4개 협약(제87호·제98호의 결사의 자유, 제29호·제105호 강제노동 금지)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논의를 법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맡겼다.
ILO 설립 100주년을 맞은 2019년,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4월 15일 관련 논의를 마무리하고 공익위원안을 발표했다.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공익위원 권고안의 성격이다. 경사노위가 마련한 공익위원안은 해고자·실업자의 조합원 자격 허용, 공무원 노조 가입 직급 제한 삭제, 교원 및 퇴직공무원의 조합원 자격에 대한 자율 결정과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사업장 점거 방식의 쟁의행위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지난해 10월 4일, 국회에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부가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제대로 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20대 국회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가 개원한 올해 6월, 정부는 지난해 발의했던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다시금 제출했다.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은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을 위한 현행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조항 삭제 ▲종사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노조 활동 제한 ▲기업별노조 대의원 및 임원 자격 종사근로자에 한정 ▲근로시간면제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 삭제 ▲근로시간면제한도 초과의 단체협약 무효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경사노위로 이관 ▲개별교섭 시 차별 대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연장 ▲사용자 점유배제의 쟁의행위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ILO는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스스로 정해야 한다”며 “노조의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는 국가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번에 개정된 노조법은 여전히 국가 개입으로 노조의 권한이 위축될 여지가 크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서조항만 삭제할 경우, 정부로부터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노조를 설립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더욱이 기업별노조의 대의원과 임원 자격을 노사 자율에 맡기는 게 아니라 해당 사업 혹은 사업장에 종사하는 사람에 한정하도록 노조법에 명시했다. 근로시간면제자 임금 지급에 대한 규정을 삭제하긴 했지만, 노사가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초과해 합의한 것 역시 무효로 규정했다. 노사 자율의 영역이 국가의 강제로 결정된 셈이다.
헌법 초월하는 노동법?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제약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별교섭 시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에 대한 차별 대우를 금지한다고는 하지만, 권고 정도다.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소수노조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 이후 설립된 신생노조의 경우, 헌법 제33조에서 보장하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에서 제약이 생긴다.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로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까지로 설정할 수 있게 되면서 단체협약 체결 이후 설립된 노조의 단체교섭권 행사에 어려움이 생긴다. 또 노조의 기본적인 목적은 노동조건 향상에 있는데, 불리한 조항을 최대 3년 동안 바꿀 수 없다는 것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노동조건의 악화 역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을 제약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 판단과 반대로 가는 입법
처음 정부 발의안에 포함됐던 “종사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이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에는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한 사업장의 내부 규칙 또는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조항은 삭제됐으나, “종사근로자가 아닌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미 대법원은 올해 7월과 9월, 종사근로자가 아닌 산별노조 조합원이 쟁의행위가 벌어지는 사업장에 지지하러 방문하는 경우와 사내하청업체노조가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원청 사업장에서 쟁의행위에 돌입한 경우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에서 산별노조의 쟁의행위와 관련한 위법성에 대한 조각 판결이 나왔음에도 그 이후 진행된 입법은 이를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는 관련 없는데…
갑자기 끼어든 선택적 근로시간제
노조법과 함께 개정된 근로기준법 역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국회 문턱을 넘은 개정 근로기준법에 단위기간이 3개월 이상 6개월 이내인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과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3개월로 연장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은 ILO 기본협약 비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연장은 이미 2019년 2월 19일,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합의된 사안이다. 그러나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에 대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 연장은 노동시간 단축기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인해 모든 산업에서 장시간 노동이 조장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개정 근로기준법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자,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반대토론에 나섰다. 강은미 원내대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과로사 촉진법”이라고 규정했다. 강은미 원내대표는 “업무상 질병사 판정을 받은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 1,400여 명 중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한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72.6%에 이른다”며 “현재 상정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주 64시간 이상의 노동을 용인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아직 입법 절차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정부이송을 거쳐 대통령이 15일 안에 공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법안 공포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 국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국회의 역할은 끝났다. “결사의 자유에 대한 협약 비준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고려”하고 “근로자의 노동기본권 보호 및 자율과 상생의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 주체는 근로자임을 명시”하겠다는 입법 목적을 상기하면서 ‘개정 노동법이 노동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제는 정부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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