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병을 예방하는 일을 한 지 20년째인 의사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1980년대 말에 15세에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군 사건과 수백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노동자를 위한 의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심의 회의록을 읽어 보고, 중대재해 정의에 직업병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대재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야 모두 동의한 것은 첫째 업무로 인한 사망자 1명 발생, 둘째 동일한 원인으로 발생한 6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그런데 직업병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를 하지 못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6개월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 2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포함시키려 하고, 고용노동부는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일한 원인으로 5명 이상 발생한 재해’로 하자고 주장했다. 여야와 노동부 모두 의견 일치를 본 내용도 있었다. ‘질병은 동일한 원인으로’ 다수 발생한 경우를 중대재해로 본다는 것이다.
회의록을 보니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이렇게 물었다. “6개월 요양이 필요해도 중대한 재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컨대 근골격계 이런 게 있으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고 차라리 다목에 있는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별도로 규정하자 이게 고용부 의견이지요?”
박화진 노동부 차관은 답변했다. “(메탄올 실명 같은) 그런 재해만, 질병만 염두에 두고서 규정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해서 그렇게 범위를 좁혀 본 겁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5명이라는 것 자체가 좀 인위적인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반복된 그러니까 동일한 원인이라고 하면 질병도 ‘2명 이상’ 해도 그와 같은 취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어차피 질병은 처벌 수위가 사망사고보다 굉장히 여러 가지 양형으로 조절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중대재해 정의에서 직업병을 사고로 인한 부상과 달리 보지 말자는 송 의원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참고로 메탄올 실명 같은 대표적인 직업병은 세 공장에서 각각 두 명씩 발생했다. 질병의 종류를 시행령에 위임하자는 주장은 더 문제가 있다. 급성 중독성 질환 등 일부 직업병만 인위적으로 시행령에서 규정하면, 분명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에 부합하는 사안인데도 근거가 없어서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급성 중독성 질환은 요양기간에 상관없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2015년 남영전구 철거 현장에서 건설업 4차 하청업체 노동자 약 20명이 수은에 중독된 사건, 2016년 삼성전자 3차 하청의 불법파견 생산직 노동자 8명이 메탄올에 중독된 사건, 2018년 서울반도체에서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검사장비를 사용하다 협력업체 직원 두 명이 방사선에 피폭된 일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들이다. 또한 2018년 삼성전자 사내협력업체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몇 달 전에도 같은 장소에서 세 명이 불산화상을 입었다고 알려졌다. 그때 그 사업주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다면 그 이후의 사망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질병은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해도 중대재해가 아니라는 노동부 의견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법안소위에서 박주민 의원이 법무부 차관에게 물었다. “전치 3개월, 어느 정도 중한 겁니까? 일반 형사 상해나 이런 걸로 볼 때?” 법무부 차관은 “상당히 중한 편”이라고 말했다. 송기헌 의원은 “복합골절이 12주”라 했고, 백혜련 의원은 “12주네요, 굉장히 중상인데요”라고 했다. 중대재해 정의에 제시된 요양기간 요건은 3개월도 아니고 6개월이다. 국내 한 논문은 전체 근골격계 산재자의 1.9%만이 6개월 이상 요양자라고 보고했다. 근골격계질환뿐 아니라 과로에 의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직업성 암 같은 만성 직업병이 동일한 원인으로 발생하고 6개월 이상 요양 필요자가 두 명 이상 발생한다는 것은 매우 매우 드문 상황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의 같은 공정에서 같은 조로 짝을 이뤄 일했던 두 명이 백혈병에 걸린다던가, 어떤 공장에서 같은 부서에서 심장질환이 1년6개월 사이에 일곱 명이 발생한다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는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일이다. 전자는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와 이숙영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2007년에 한국타이어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백혜련 법사위 법안소위 위원장은 중대재해 정의에 대해 이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조문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가목, 나목, 다목 정도로 해서 아까 사망의 경우 그다음에 부상의 경우, 질병의 경우로 나눠서 규정하는 것으로 하겠고요. 조금 더 그 조문안은 부처 간에 다시 또 협의해 주시기 바라겠고요.”
노동부와 법무부에 바란다. 중대재해 정의에 직업병에 관한 사항을 시행령으로 규정하자는 안을 철회해야 한다. 법사위 법안소위에 바란다. 급성 중독성 질환 또는 6개월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직업성 질환이 2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중대재해로 정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