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자회사에는 현재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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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968회 작성일 20-11-10본문
소산별노조 구성을 통한 자회사 노동자의 조직적 대응 필요
[리포트]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 현재를 살피다
4만 6,970명.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이후 자회사 방식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의 숫자다. 2020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 절차가 완료된 18만 5,267명 중 25%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자회사 방식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자회사 방식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현재 자회사는 용역계약 형태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5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은 당장의 오늘도, 회사의 내일도 걱정거리일 뿐이다. 공공기관 자회사의 내일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공공기관 자회사의 갈등,
어디서 왔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1단계가 마무리되는 시기는 올해 12월. 현재까지 약 95%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그중 약 25%는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정규직이 됐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자들은 다시 투쟁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한국수력원자력의 시설·운영 자회사 퍼스트키퍼스(주)의 노동자 800명은 퇴근 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에 합의하는 대신 약속했던 ▲모·자회사 낙찰률 94% 보장 ▲매년 시중노임단가 변동분 기본급 반영 ▲용역 시절 소장(현 팀장) 정년 60세 이행 등의 합의사항 이행을 한국수력원자력과 퍼스트키퍼스(주)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외에도 공공기관 자회사 곳곳에서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운영 자회사인 인천공항운영서비스(주)의 노동자들은 ▲용역 때와 같이 감독부서의 직접적인 업무지시로 자율성 침해 ▲사업소별 용역도급계약 체결 ▲자회사 전환 후 임금삭감 및 인원감축 시행 등을 지적하며 공공기관 자회사가 용역회사에 불과하다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올해 5월, 한국수자원공사의 자회사인 케이워터운영관리(주) 역시 2년째 임금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설계금액 변경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벌였다.
공공기관 자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이미 예견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정태호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위원장은 “모호한 가이드라인과 함께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성과를 위해 전환 성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면서 충분한 논의 없이 정규직 전환이 강요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수자원공사가 구성한 노사전협의회는 회의를 단 3번밖애 열지않았다. 3번의 노·사·전협의회 이후 한국수자원공사의 비정규직들은 케이워터운영관리(주)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단일한 임금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아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 사이에도 임금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케이워터운영관리(주) 노사는 260여 개의 임금체계를 직군별로 통합하기 위해 임금체계 개선 공동TF를 운영했으나 결국 결렬됐다.
정부의 대안은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
효과는 글쎄
최근 <공공기관 자회사의 운영실태 및 개선방향>에 대해 연구한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이원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겸임교수,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해당 논문에서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파견·용역 방식으로 노무를 제공하던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자회사 설립을 통해 한 경우가 많다. 대상자의 대부분이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단순 노무를 공급한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의 업무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이전에 설립된 자회사들처럼 민영화와 전문화를 지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시장이 요구한 것도 아니”라고 분석했다. 정부 정책이 변한다면 자회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가 대두한다는 것이다.
2018년 연말 정부는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도로 용역회사’가 되지 않도록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을 권고했지만, ▲처우개선 미흡 ▲단순 용역회사에 불과 ▲권고대로 자회사가 운영되지 않는 현실 등의 비판에 직면했다. 2019년 9월부터 두 달 동안 한국노동연구원이 공공기관 자회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친 끝에 공공기관 자회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인지한 정부는 올해 3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자회사의 지속가능성, 낮은 처우수준 및 독립적 전문서비스기관으로 자회사의 성장을 유도하려는 모회사의 역할이 미흡하다”며 “설립근거 등을 정비하고, 수의계약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자회사의 지속성 및 노동자 처우 개선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됐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를 진행 중으로 올해 연말까지 평가가 진행된다”며 “지금까지 문제라고 제기된 갈등은 개선돼가는 중이고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가 종료된 이후인 내년에는 많은 자회사의 운영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언급한 퍼스트키퍼스(주), 인천공항운영서비스(주), 케이워터운영관리(주)의 사례는 모두 올해 3월 이후 발생했다. 자회사 노동조합 관계자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은 ▲자회사 설립·위탁 근거 마련 ▲모·자회사 경영협약 체결 ▲사내근로복지기금 공동 활용 장려 등 원론적인 내용에 그쳐 자회사 노동자의 실질적인 처우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험,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
대부분 공공기관은 개별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설립된 80개의 자회사 중 눈에 띄는 곳은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이다. 2020년 1월 출범한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비롯한 17개 기관의 공동 자회사다.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에는 현재 관리직 10명을 포함해 838명의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돼 일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시작되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연구소는 자회사를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소의 비정규직 규모는 100명 미만으로 개별적으로 자회사를 설립할 때 일반관리비 비중이 커진다는 문제가 발견됐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비영리 재단법인을 통한 공동 자회사 운영이었다.
25개 연구소 중 21개 연구소가 공동 자회사 설립에 참여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개별기관의 노·사·전협의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8개 연구소가 참여해 2020년 1월,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을 설립했다. 7월과 10월에는 각각 4개 연구소와 5개 연구소가 추가로 공동 자회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현재 각 연구소와는 MOU를 체결해 인력파견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 관계자는 “사업비의 97% 정도가 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책정됐다”며 “비영리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이윤으로 책정되는 비용이 없고 관리직 역시 10명으로 적은 편이기에 사업비의 3% 정도로 관리직 인건비와 일반관리비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업무협약은 기한의 정함이 없이 맺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나중에 연구소에서 사업비를 깎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잘 관리하라’고 당부했지만, 걱정하지는 않는다”며 “정당하게 업무협약을 맺고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기존의 사업비를 삭감하기 위한 시도를 할 때는 업무협약을 종료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 역시 모든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같지 않다. 60개 이상의 용역회사 소속 노동자가 각기 다른 임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2년 남짓한 시간으로는 어림없었다.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 관계자는 “2022년까지 임금수준을 맞춰가기로 노동자들과 합의했다”며 “(재)과학기술시설관리단은 처음 하는 공동 자회사 사업으로, 잘돼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자의 미래 위해
대규모의 정책적인 대응 필요
김기우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이원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겸임교수,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공공기관 자회사의 운영실태 및 개선방향>을 통해 “초기업단위의 노조조직 형태로의 전환이나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들은 “자회사는 설립된 지 얼마 안 됐고 모회사에 대한 종속성이 커 자회사 노동자들의 이익을 집단으로 대변하기 어렵다”며 “자회사 노동자의 집단적 이익 대변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소산별노조로 묶어 조직의 규모를 늘리고 운영인력을 확보하면서 모회사와 자회사의 전반적인 운영상황을 공유하는 등 자회사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의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에 포함된 모·자회사 노사의 공동노사협의회를 구성해 모회사에 대한 자회사의 강한 종속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정태호 한국노총 공공노련 공공산업희망노조 위원장은 “모회사는 자회사 노동환경 등의 대부분을 결정할 수 있지만, 모회사와의 공동‘협의’는 ‘교섭’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애림 서울대학교 고용복지법센터 박사는 10월 21일, 노조법 개정 관련 노사정 토론회에서 “하청업체는 노동자의 고용 기간과 노동조건을 통제하지 않는다며 교섭 거부하고 원청업체는 노동자들과 고용관계가 없다면서 교섭 거부하는 등의 행위가 나타난다”며 “원청을 상대로 노조할 권리에 대한 입법안이 현재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공공기관 자회사의 내일은 모회사나 정권의 선의에만 기대서는 담보할 수 없다. 정태호 위원장은 “공공기관 자회사 문제는 개별 노사관계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며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큰 틀에서의 연대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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