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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 한 척에 딸린 입이 1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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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590회 작성일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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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 한 척에 딸린 입이 13명"

 


가을 꽃게로 먹고 사는 사람들
수도권 꽃게 경매 중심가, 인천수협연안위판장 취재기
두 달 동안 잡은 가을 꽃게가 어민들 1년 살림살이

먹거리가 풍성해지는 가을. 바다에선 꽃게가 한창이다. 통상 8월 20일을 시작으로 약 두 달간 어획량이 급증한다. 일손도 그만큼 바삐 움직인다. 밥상 위에 오른 한 마리 꽃게에 많은 노동이 스며있다. 9월 21일, 수도권에서 꽃게 경매가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인 인천수협연안위판장을 찾았다. 분주한 몸짓이 오갔던 위판 경매가 끝난 점심 무렵. 조용해진 부둣가로 꽃게잡이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배위의 선장과 갑판장은 다음 날 새벽 꽃게잡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김상호 갑판장이 연안부두에 배를 정박하기 위해서 밧줄을 쥐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송창익 기자 cisong@laborplus.co.kr

위판 경매가 끝난 오전 11시경. 연안부두에 정박한 꽃게잡이 어선을 찾았다. 하루 전날 '자망(그물)'을 걷어온 터라 배에는 꽃게가 한 마리도 없었다. 차남진 선장(58세‧가명)과 김상호 갑판장(52세‧가명)은 자망과 통발을 정돈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그물을 만지고 바닷물에 찌든 까닭에 손톱 10개는 가뭄이 난 논바닥처럼 쪼개지고 갈라져 있었다.

자망과 통발은 둘 다 꽃게잡이에 사용한다. 통발로 잡을 때는 정어리, 멸치 등 미끼를 넣어 꽃게를 유인한다. 꽃게가 바닥을 걸어 다닐 때면 통발로 들어가지만, 바닷물 흐름이 거세져서 꽃게가 1m 이상 떠다니면 통발로 잡기 어렵다. 그때 사용하는 게 자망이다. 자망을 쓰면 바다를 떠다니는 꽃게도 잡을 수 있다.

차남진 선장이 꽃게를 잡는 해역은 덕적도와 연평도 근해다.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면 4시간가량 걸린다. 한 번 바다로 나가면 일주일, 길면 보름 만에 육지로 돌아온다. 배가 비교적 큰 10톤급이라서 먼바다까지 나갈 수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무인도든 사람 사는 곳이든 섬에 들어가 쉴 때도 있다.

"정년 없는 뱃일,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어 만족해"

김상호 갑판장은 15년 차 뱃사람이다. 뱃사람이 되기 전에는 강원도에서 직업군인으로 일했다. 뱃일과 마찬가지로 15년을 근무하다 상사로 전역했다. “몸에 맞는” 직업이었지만, 가족들이 힘들어했다. 전방 근무, 훈련 등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집에 못 들어가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싫어서 나왔는데, 막상 해먹고 살 게 없었다. 군 생활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다.”

김상호 갑판장은 딸‧아들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돈 되는 일을 좇았다. 어선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배에 올랐다. 뱃사람 15년. 남매는 자라서 독립하고, 딸은 결혼해서 손주도 봤다. “초등학교 들어간 손주 못 보는 게 제일 힘들다”는 김상호 갑판장은 지금 일이 고되지만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벌이가 이만하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잘릴 염려가 없으니까. 정년이 없는 일이라 건강 관리하기 나름이다. 일하는 사람 중에 70대 중반도 있다. 그만큼 관리 잘하면 나이 들어서도 집에 손 안 벌리고, 손주 용돈도 팍팍 줄 수 있다.”


"고기 많이 잡는 게 선장의 일,
이 배에 딸린 식구들 생각하면 책임감 커"

25년째 뱃일을 하는 차남진 선장은 선주와 계약을 맺은 ‘고용 선장’이다. 배를 타기 전에는 12년간 부평 대우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 대공장 현장감독 직에 있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쳐오자 스스로 공장을 떠났다.

"당시 밑에 직원 36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 중 9명을 정리해고 하라더라.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정말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내가 관뒀다. 나도 가정이 있었지만, 가장 9명을 자르는 것보단 나았다."

공장을 나온 직후, 차남진 선장은 큰형의 도움으로 배를 타게 됐다. 오랜 시간 경력을 쌓으며 선장 자리에 올랐다. 높은 자리에 오른 만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차남진 선장은 "많은 고기를 잡는 것에 가장 큰 책임을 느낀다"며 "고기를 못 잡으면 배 위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꽃게를 많이 잡기 위해서 차남진 선장은 잠을 줄인다. 그물을 하나라도 더 올려야 꽃게를 더 많이 잡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 정도다. "잠을 1시간 덜 자면 그물을 10개 더 올릴 수 있고, 꽃게를 한 가구라도 더 채울 수 있다"는 게 차남진 선장의 설명이다.

"우리 배를 타는 인원이 선장까지 7명이다. 또 대명항 어판장 가게 소매상에서 일하는 사람이 3명, 여기서 그물 추리는 사람이 3명이다. 이 배 하나로 13명이 먹고 산다. 그러니 선장은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수산물이 계절에 따라 달리 나기 때문에, 어선도 철에 따라 수입에 큰 차이를 본다. 차남진 선장이 꼽은 최고의 돈벌이는 꽃게다. "꽃게 두 달 잡아서 1년 먹고사는 셈이다. 다른 건 잡아봐야 현상유지 수준이다. 유류비, 인건비, 유지비 빼면 남는 게 없다"면서 "꽃게가 안 잡히면 어민들이 '망하게 생겼다'고 얘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앞으로 20일이면 가을 꽃게 철이 끝난다. 어민들이 올해 꽃게잡이에 나설 기회가 두어 차례 남은 셈이다. 인터뷰를 마친 차남진 선장은 김상호 갑판장, 베트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자망 손질을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출항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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