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끌고 나가는 노동이슈는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예고했다. 임금·노동시간 유연화를 넘어 ‘법치주의’를 앞세운 노동 3권의 무력화가 예상된다. 올해 주목할 인물 역시 노동개혁 깃발을 든 윤석열 대통령이 꼽혔다.
지난달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21년 올해의 주목할 노동이슈와 인물’을 설문 조사한 결과다. 설문 참여자들은 올해 주목할 노동이슈와 주목할 인물을 직접 기입했다. 복수응답도 가능하다.
노동시장 유연화 담은 노동개혁
‘법치’ 앞세운 노동 3권 무력화
올해 주목할 노동이슈로 ‘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 과제’를 꼽은 사람은 74명이다. 2위(28명)와 표차가 두 배 이상 날 정도로 압도적이다.
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 설계도는 이미 나왔다. 지난달 교수 12명으로 구성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주 12시간으로 상한을 정한 연장근로를 월·분기·연 단위로 확대할 것과 연공급의 임금체계를 해체할 것을 권고했다. 임금·노동시간뿐만 아니다. 고소득·전문직에는 노동시간 규제를 아예 없애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비롯해 주휴수당·파견·부문별 근로자대표제도 등 재계가 오랜 시간 없애거나 바꿔 달라고 요구했던 광범위한 노동이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올해는 이를 본격적으로 실행하는 해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노동부는 지난해 말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3년치 노조 회계장부를 제대로 비치하고 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노사관계 법치주의’를 앞세워 노동시장 유연화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법 제정 70년 맞은 올해
노조법 2·3조의 운명은?
2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공방이 차지했다. 28명의 선택을 받았다. 노조법 2·3 개정 목소리는 지난해 7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며 스스로를 1세제곱미터 감옥에 밀어 넣은 대우조선 하청 용접공의 외침에서 시작했다. 최대 호황기에 접어든 조선소에서 10여년 전보다 30% 가까이 삭감된 최저임금을 받는 하청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자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와 회사는 ‘불법파업’이라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예고했고, 실제로 대우조선은 하청노조에 470억원을 청구했다.
이 사건으로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중첩적 노사관계에, 부재한 사용자 책임 등 구멍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을 조르는 무분별한 손배소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국회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하반기 주요 입법과제에 포함시키면서 한때 개정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 연말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면서 법안 처리에 다소 힘이 빠진 상태다. 노조법 제정 70주년인 올해, 노동자·사용자·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손해배상 제한을 둘러싼 국회 논의가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 쏠린다.
공동 3위(22표)는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와 노동법 사각지대 속 확대되는 불평등이 올랐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국면은 SPC그룹 빵공장 끼임사고를 비롯한 잇단 산재사고가 터지면서 ‘일시 정지’ 상태다. 당초 지난해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가 예정됐지만 여론 악화를 우려한 정부가 법령 개정 대신 사업주 자기규율을 강조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를 택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법 흔들기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법무부 장관이 고시한 중대재해 예방에 관한 기준을 잘 지킨다고 인증받으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처벌을 면하거나 감경해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기규율을 강조하는 노동부의 대책과 한 끗 차이다.
함께 3위를 차지한 확대되는 불평등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맞닿아 있다. 노동계 응답자들은 올해 주목할 이슈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비정형 노동자 보호방안같이 현행 노동법 체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의 불평등을 주목했다. 반면 사용자와 정부기관 응답자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대책을 주로 꼽아 차이가 났다.
5위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방안으로 촉발된 ‘위기의 공공부문 노사관계’(21표), 6위는 ‘노정관계 악화일로 속 실종된 사회적 대화’(16표)가 선정됐다. 7위는 제조업 불법파견 판결, 원청의 공동사용자성 문제같이 뒤로 숨은 진짜 사장 ‘실질적 사용자’(10표)가 차지했다. 응답자들의 답변에서 올해 노사, 노정관계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를 읽을 수 있었다. 8위는 치솟은 물가와 높아지는 경제위기(9표), 9위는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과 사회안전망(5표)이 자리했다. 10위는 올해 이뤄지는 양대 노총 임원선거(2표)가 차지했다.
노동개혁 둘러싼 노사정 구도에
주목할 인물 ‘싹슬이’
올해 주목할 인물 1위에는 ‘올해 노동개혁을 최우선 추진하겠다’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이 올랐다. 35명이 윤 대통령을 선택했다. 2위는 24표를 얻은 차기 한국노총 위원장이 꼽혔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노사정 합의는 사회적 동의 절차가 필수적이다.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방향키를 쥘 게 분명하다. 노사정의 눈과 귀가 이번 한국노총 결과로 쏠릴 수밖에 없다. 3위는 노동개혁을 실행할 주무부처인 노동부 수장 이정식 장관이 차지했다. 17명이 이 장관을 선택했다. 3표 차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공동 4위에 올랐다.
그 밖에 유니온운동 활동가(3표)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각 2표)이 주목할 인물로 언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