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쌓이고 있다. 최근 법원은 ‘재직자 조건’과 관련해 퇴직·정직·휴직인 경우 기본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기본상여금은 근로제공 여부를 따지지 않고 특정 시점에 재직한 직원에게만 지급하는 ‘유동적인’ 보수와 성격이 다르다는 취지다.
한수원 1천18명 통상임금 집단소송
1심은 기본상여금 통상임금 부정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1부(정경근·이호재·민지현 부장판사)는 한국수력원자력 전·현직 직원 A씨 등 91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날 다른 직원 99명의 사건도 같은 재판부가 동일하게 결론 내렸다. 항소심 결론까지 약 10년이 흘렀다.
한수원은 단체협약과 보수규정 등에 따라 직원들에게 기본상여금·기본성과급·경영성과급·기술수당 등을 지급해 왔다. 그러면서 기본급과 수당만을 통상임금 항목에 포함해 각종 수당을 산정했다.
회사는 2012년 1월부터 기본상여금 연간지급률을 300%로 유지하되 분기별로 75%씩 지급하면서 지급대상을 재직 중인 자로 한정했다. 이에 직원들은 기본상여금과 성과급 등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수당을 다시 계산해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며 2013년 8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기본상여금의 통상임금성 인정 여부였다. 1심은 “기본상여금은 지급기준일 현재 재직 중일 것을 추가적인 조건으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고정성’을 결여했다”며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다. 재직조건을 부과해 퇴직이나 휴직 중인 사람은 지급대상에서 배제하도록 정한 보수규정 시행세칙이 단체협약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기본성과급·자체성과급·연봉제 직무급·연구수당 등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기본상여금은 당연히 지급되는 성격”
2013년 대법원 전합체 판결 바뀔 가능성 커져
항소심은 1심을 뒤집었다. 기본상여금은 제공한 근로에 대해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 ‘업적이나 성과’ 등과 무관하게 당연지급을 예정하고 있는 성격이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재직조건을 지급일 현재 퇴직, 정직 또는 휴직 중인 자에 대해 이미 제공한 근로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그와 같이 해석한다면 보수규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보수규정 시행세칙이 추가적인 ‘지급조건’을 부과해 퇴직·휴직 중인 직원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지급기준을 새로 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시행세칙은 지급기준일 직전의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률이 고정된 기본상여금을 지급하고, 신규채용자나 결근·휴직·정직기간이 있는 직원은 근무기간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하도록 정했다”며 “지급관행에 따르더라도 기본상여금은 근로제공 여부를 묻지 않고 특정 시점에 재직한 사람에게만 전액을 지급하도록 정한 유동적인 보수들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같이 판례 흐름은 ‘재직자 조건’이 무효로 바뀌는 추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재직자 조건이 있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2018년 12월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보고 대법원 판결에 반기를 들었다. 이후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금융감독원 통상임금 소송’에서 급여규정에 일한 만큼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일할 정산’ 규정이 없더라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다. 통상임금 기준의 해석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한수원 직원들을 대리한 김건우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로)는 “법원은 휴직하거나 퇴직한 직원들의 상여금을 재직자 조건을 이유로 형식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고 명시했다”며 “통상임금의 본질에 구체적으로 접근해 근로의 대가성을 구체적으로 판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