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발생한 재하청업체(하수급인) 소속 일용직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하청업체(직상수급인)가 지급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하청업체가 재하청업체에 하도급 대금을 지급했더라도 재하청업체가 임금을 미지급했다면 하청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2021년 6월 동일한 업체 사건에서 같은 취지로 판결했다.
일용직 4개월 임금체불에 원청 상대 소송
“직상수급인의 임금지급 연대책임” 쟁점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석공업체 B사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A씨 등 8명이 B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재하청 소속 노동자의 임금지급의무가 원청에 있는지가 쟁점으로 다퉈졌다. B사는 2018년께 건설업체 C사에서 신축공사 중 석공사 부분을 도급받았다. 이후 그해 11월 석공사의 시공 부분을 C사에 재하도급했다. B사는 네 차례에 걸쳐 C사에 공사대금 1억7천여만원을 지급했다. C사는 이 금액을 임금 지급에 사용했고, 2019년 2월에 하도급 계약을 종료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그런데 C사 소속 일용직 노동자 A씨 등은 2019년 2월까지 약 4개월간의 임금 일부를 받지 못하자 2019년 4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B사가 아닌 C사 소속으로 인정되더라도 B사 전무가 노임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며 “B사는 C사의 직상수급인으로서 C사와 연대해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 등이 근거로 내세운 법률은 근로기준법 44조의2 조항이다. 건설업에서 두 차례 이상 도급이 이뤄진 경우 건설사업자가 아닌 하수급인이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때에는 직상수급인은 하수급인과 연대해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진다. A씨 등의 주장은 건설사업자가 아닌 C사가 임금을 체불했으므로 직상수급인인 B사가 임금을 줘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B사측은 “C사에 임금을 포함한 하도급대금을 모두 지급함으로써 임금지급의무를 이미 이행했다”고 반박했다.
법원 “직상수급인 임금 미지급, 강행규정 위반”
“하도급 건설노동자 권리 보장 취지”
1심은 B사에 고용돼 지휘·감독에 따라 노무를 제공했다는 A씨 등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B사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점은 부정하면서도 B사에 임금지급의 연대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사는 C사의 직상수급인이자 등록건설업자로서, C사가 사용한 근로자인 원고에게 미지급 임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설령 B사가 하도급대금을 모두 지급했더라도, B사는 이러한 사정과 관계없이 C사 근로자인 원고에게 아직 지급되지 않은 임금을 지급할 연대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A씨 등이 C사에 임금 수령권한을 위임했더라도, B사가 C사에서 노임수령위임장을 받고 하도급대금을 지급한 후 직상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규정을 형해화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건설업의 임금지급 연대책임을 정한 근로기준법 조항이 ‘강행규정’이라는 2021년 6월 대법원 판결과 맥락이 같다. 당시 대법원은 원청의 귀책사유 또는 하도급대금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원청에 임금지급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불법 하도급’으로 인해 재하청(하수급인)의 임금지급의무 불이행에 관한 ‘추상적 위험’을 야기한 잘못이 있고, 실제로 이러한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 직상수급인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